비틀스의 음악 ‘노르웨이의 숲’이 흘러나오는 함부르크 공항의 기내에서 서른일곱 살의 와타나베 토루는 순식간에 20년 전의 과도기로 회귀한다. 비행기 좌석에 묵직하게 안착한 주체할 수 없는 기억의 무게는 곧 세상을 떠난 이들과 남아 있는 이들 사이의 가파른 국면을 환기시킨다. 하루키의 붓끝에서 그려지는 청춘의 풍경은 눈부시거나 빛나는 찬가가 아니다. 그것은 서늘하고 쓸쓸하며 때로는 참담할 정도로 정적에 싸여 있다. 저자는 시작부터 명징하게 선언한다. 죽음은 삶의 대극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삶 속에 하나의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죽음의 그림자와 고립된 영혼들
열일곱 살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기즈키의 부재는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삶에 거대한 음영을 드리운다. 기즈키라는 축을 잃어버린 세계에서 두 사람은 완전히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실을 감내하려 애쓴다. 도쿄의 대학에 진학하여 지극히 관조적이고 무심한 표정으로 일상을 영위하려는 와타나베의 자세는 삶에 대한 방관이 아니라 고통에 파묻히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기제이다. 그는 도서관과 기숙사, 아르바이트 현장을 오가며 타인과의 깊은 결속을 유예한 채 냉정할 정도로 자신을 격리한다.
반면, 기즈키의 연인이었던 나오코는 과거의 그늘에서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녀에게 세계는 무너져 내린 고요한 요새와 같으며, 그 안에서 마음의 균형은 서서히 균열을 일으킨다. 요양원 ‘아미료’의 깊은 숲속에 자신을 가둔 나오코의 모습은 현실의 논리와 완전히 단절된 채 기억에 잠식당해 가는 영혼의 처절한 투쟁이다. 와타나베가 그녀를 찾아가 나누는 고요한 산책과 나지막한 대화들은 언어로 완전하게 포섭될 수 없는 마음의 비어있는 영역을 서글프게 입증할 뿐이다.